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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전투기 & 공격기

58년전 북괴의 푸에블로호 나포, 한국에 전개했던 F-102 Delta Dagger

by viggen 2026. 1. 13.

1968년 1월 23일 오후 1시 45분경(한국 시간), 북한 해군 초계함이 원산 인근 동해 공해상에서 미 해군 정보 수집함 USS Pueblo를 나포했다. 이 과정에서 USS Pueblo 승조원 1명이 사망하고 82명이 포로로 잡혀 11개월간 억류됐다.

이 사건은 북한 특공대가 서울에서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지 이틀 만에 발생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당시 '제2차 한국전쟁'으로 불리던 수년간 지속되어 온 북한의 도발 행위를 더욱 부각시켰다.

USS Pueblo 나포 사건은 자유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미국에서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보복 조치를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막대한 군사력을 투입해야 하는 남베트남 전쟁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이후 몇 달 동안 미국이 한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워싱턴 DC의 민간 및 군 지도부는 북한군이 USS Pueblo 를 나포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승무원과 함선을 구출하고 회수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했다. 전면적인 군사 행동도 고려됐지만,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고 판단됐다. 설상가상으로 남베트남에서는 Khe Sanh 전투가 발발했고, 그달 말에는 Tet 공세가 이어졌다. 군사 행동이 승무원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을 우려한 Lyndon B. Johnson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승무원 석방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시작했다. 동시에 1월 26일에는 한반도에 미 공군 병력을 증강하고 주방위군부대까지 동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USS Pueblo 가 나포되었을 당시, 한반도에 주둔한 미 공군 전투 병력은 일본 기지에서 오산과 군산 공군기지로 전투기를 순환 배치하는 것에 그쳤다. 이 전투기들은 특별 경계 태세에 있었기 때문에 즉각적인 공중 지원을 제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USS Pueblo 나포 사건 발생 2시간 후, 일본 Fuchu 공군기지에 주둔하며 한반도 내 미 공군 작전을 총괄하던 제5공군 사령관은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에 주둔하던 제18전술전투비행단 제12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F-105  Thunderchief 전폭기 34대를 오산 공군기지로, 그리고 일본 미사와 공군기지에 주둔하던 제475전술전투비행단 소속 제356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F-4C Phantom 전폭기 14대를 군산 공군기지로 배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두 부대의 일부 병력은 1월 23일 늦게 한국에 도착했고, 나머지 병력은 1월 29일에 한국에 도착했다. 오키나와 나하 공군기지에 주둔하던 제51전투요격비행단(FIS) 소속 제82전투요격비행대대(FIS) 또한 한국으로 배치될 예정이었다. 해당 비행대대는 22대의 F-102 Delta Dagger 전투기를 이끌고 1월 30일 수원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태평양 공군사령부소속의 네 번째 부대인 남베트남 캄란만에 주둔하던 제12전술비행단 예하 제558전술전투비행대대는 추가 배치를 명령받아 14대의 RF-4C Phantom 정찰기를 이끌고 2월 4일 군산 공군기지에 도착한 후 3월 10일 대구 공군기지로 이동했다.

 

1966년경 일본 오키나와 나하 공군기지의 격납고에 주기된 제51전투요격비행단 예하 제16전투요격비행대대 소속 F-102 Delta Dagger 전투기들. 51FW의 일부였던 제16전투요격비행대대는 1959년 12월 7일 오산 공군기지에 F-102를 처음으로 배치했다.

이 전투기는 1964년 제16전투요격비행대대가 베트남에 파병되었을 당시에도 비행단의 전력 중 하나였다.


국가 지휘 당국이 작전 방침을 결정하자, 합동참모본부는 1월 26일 주한미 공군 병력 증강을 명령하는 한편, 남베트남전에 투입됐던3개 해군 항공모함 전단을 한국 연안으로 이동 배치하도록 지시했다.

미 공군의 USS Pueblo 나포 사태 대응 작전은 'Operation COMBAT FOX'으로 명명됐다. 이 작전은 현역 부대가 먼저 투입된 후 예비공군과 주방위군 부대가 합류하는 2단계 작전으로 진행됐다. 한국과 오키나와에 배치된 180대 이상의 전투기는 태평양 공군사령부, 전술항공사령부, 전략항공사령부, 그리고 항공우주방위사령부 소속 부대에서 나왔다.

다음은 한국에 배치된 TAC 소속 부대들입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Seymour-Johnson 공군기지에 주둔한 제4전술비행단은 3개 전투비행대대(334전술전투비행대대, 335전술전투비행대대, 336전술전투비행대대)와 72대의 F-4D 전투기를 1월 31일부터 2월 4일 사이에 군산 공군기지에 배치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Shaw 공군기지에 주둔한 제363전술정찰비행단의 제19전술전자전비행대대는 6대의 EB-66 전자전 정찰폭격기를 2월 3일에 오산 공군기지에 배치했다. 그러나 해당 비행대대는 2월 12일 대구 공군기지로 이동했는데, 이는 네바다주 Nellis 공군기지의 제4537 전자전 비행대대와 그들이 보유한 특수 개조 F-105G Wild Weasel 6대가 2월 4일까지 오산 공군기지에 배치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합동참모본부는 또한 전략공군사령부(SAC)에 B-52와 KC-135A 각각 1개 비행대대를 가데나 공군기지에 배치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몬태나주  Glasgow 공군기지에 주둔한 전략공군사령부 제91 폭격비행단은 2월 초 제322 전략정찰비행대대와 제907 공중급유비행대대를 B-52G 15대와 KC-135A 10대로 구성하여 가데나 공군기지에 배치했다.

특히, 워싱턴주 McChord 공군기지에 주둔하며 F-106 전투기를 운용하는 ADC 소속 318 FIS는 2월 11일 하와이 Hickam 공군기지와 오키나와 나하 공군기지를 경유하여 파병됐다. 이 비행대대는 2월 18일 오산 공군기지에 착륙했으며, ADC 역사상 최초로 해외 파병된 부대가 됐다.

전투 부대 배치 외에도, 미국 본토(CONUS) 출신 인원으로 구성된 주요 토목공병팀(Prime BEEF)이 한국으로 급파되어 즉각적인 시설 건설 및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이와 동시에, 미 공군 본부는 1968년 2월 제557 토목공병대대(중장비 수리)(RED HORSE)를 창설하고, 미국 본토 부대에서 인원을 충원하여 특수 건설 및 무기 훈련을 제공한 후 1968년 3월 24일까지 오산 공군기지에 배치했다. 400명 규모의 이 대대는 이후 수원, 군산, 대구, 광주 등 4개 기지에 파병대를 파견하여 약 8,000명의 임시 근무(TDY) 인원을 위한 시설 및 숙소 건설을 지원하는 주요 토목공병팀을 지원했다.

 

 

전투 및 지원 부대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배치를 보장하기 위해 일본 다치카와 공군기지에 주둔한 태평양사령부 제315항공사단은 이 비상 사태에 필요한 공수 작전을 지휘했다. C-130 수송기 외에도, 사단은 C-130을 장비한 버지니아주 Langley 공군기지의 제38전술수송비행대대(TAS)와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프 공군기지의 제779전술수송비행대대(TAS)의 지원을 받아 작전지역 내 공수 작전을 수행했다.

미군 공수사령부(MAC)는 오산, 김포, 군산 공군기지에서 C-124, C-133, C-141 수송기를 이용하여 대규모 병력 및 장비 공수 작전을 지원했다. 작전명 '컴뱃 폭스'의 첫 3주 동안 MAC 소속 항공기는 836회의 임무를 통해 7,861명의 병력과 약 12,800톤의 화물을 한국과 일본으로 수송했다.

1968년 여름, 대부분의 파병 부대가 본국으로 복귀했고, 다른 현역, 공군 예비군(AFR), 주방위군(ANG) 부대들이 한국에 도착했다. 존슨 대통령은 1월 26일 초기 파병을 승인하면서 12개 주방위군(ANG) 부대의 동원 명령에도 서명했는데, 그중 127전술전투비행대대와 166전술전투비행대대는 1968년 7월 F-100C Super Sabre 전폭기를 이끌고 군산 공군기지에 배치됐다. 또한, 여러 명의 공군 예비군(AFR)과 주방위군 병력이 각 기지에 배치되어 기지 지원 활동을 수행했다.


미 공군이 한반도에 병력을 주둔시키는 동안, 유엔 군사정전위원회와 북한 간의 협상은 판문점에서 그 해 내내 계속됐다. 북한은 USS Pueblo을 나포한 지 11개월 만인 1968년 12월 23일, 판문점을 통해 USS Pueblo 승조원과 유해 일부를 미국으로 송환했다. USS Pueblo은 북한 원산항에 억류됐다가 1999년 평양으로 이송됐다. 이 함정은 적대적인 외국에 억류된 유일한 현역 미 해군 함정이라는 기록을 가졌다. 컴뱃 폭스 작전은 승무원 석방 후 1969년 초에 종료됐지만, 한국에 대한 전투 부대의 순환 배치는 무기한으로 계속됐다.

USS Pueblo 나포 사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미약하고 우유부단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였다. 즉, 한국을 침공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미군이 무력을 동원할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제5공군 사령부는 USS Pueblo 작전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비상 계획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거의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이 위기는 한반도에 주둔하는 미 공군뿐 아니라 한국 공군의 전력 강화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더욱 강화시켰다. 컴뱃 폭스 작전 이후에도 미 공군 전투기 배치는 계속되었고, 결국 1971년 3월 15일 제3전술비행단이 군산 공군기지에 영구 주둔하게 됐다.

 

아래 사진은 1957년 NACA 고속 비행장에서 촬영된 미 공군 Century Series 전투기들의 편대 비행 모습이다.

아래쪽 중앙의 F-100 Super Sabre은 원래 주간 전투기로 개발됐지만, 후기형은 전투폭격기로 제작되어 일부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위쪽 중앙의 F-101 Voodoo은 장거리 호위기로 설계됐지만, 전투폭격기, 정찰기, 요격기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오른쪽의 F-102는 처음부터 전천후 요격기로 설계됐으며, 운용 기간 내내 이 역할을 수행했다.

왼쪽의 F-104는 원래 경량 전투기로 설계됐지만, 요격기와 전투폭격기로 사용됐다.

이 항공기들은 공군과의 대여 계약에 따라 NACA에서 운용됐다. NACA는 이 비행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대가로 NACA 연구 조종사들은 공군의 개발 노력을 지원하기 위한 평가 비행을 수행했다. 이러한 시험은 1950년대 NACA의 주요 활동이었으며, F-89, F-100, F-104에 대한 연구를 포함했다. (1957년 5월 NASA 사진)

 

Convair F-102 Delta Dagger는 미국의 항공기 제조업체인 Convair에서 설계 및 생산한 요격기이다. Century 시리즈의 일원인 F-102는 미 공군이 운용한 최초의 초음속 요격기이자 델타익 전투기였다.

F-102는 1940년대 후반 미 공군 관계자들이 제시한 '궁극의 요격기(Ultimate Interceptor)'라는 요구사항에 따라 설계됐다.주요 목적은 냉전 기간 동안 접근하는 소련 전략 폭격기 편대(주로 Tupolev Tu-95)를 요격하고 미국 방공망의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이 항공기는 정교한 사격 통제 시스템(FCS)과 함께 설계됐지만, 개발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간소화된 시스템을 채택해야 했으며 기체 내부에 유도 미사일과 로켓을 탑재할 수 있는 무장창을 갖추고 있었다.

1953년 10월 23일, 시제기 YF-102가 첫 비행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러나 첫 번째 시제기는 불과 9일 만에 사고로 파괴됐다. 두 번째 시제기 덕분에 3개월 후 비행 시험이 재개됐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원래 설계대로라면 마하 1의 초음속 비행을 달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양산에 앞서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F-102는 재설계됐다. 동체는 면적 법칙에 따라 재설계됐고, 날개는 더 얇고 넓어졌다. 비행 시험 결과 성능 향상이 충분히 입증되어 미 공군은 생산을 승인했고, 1954년 3월 새로운 생산 계약이 체결다. 1956년 미 공군에 실전 배치된 F-102는 Northrop F-89 Scorpion과 같은 여러 아음속 전투기를 대체하며 요격기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더 강력한 엔진과 개틀링 기관총을 장착한 전술 공격기 모델인 F-102C가 제안됐지만, 최종적으로는 개발되지 않았다. 미 공군과 그리스 공군, 터키 공군을 포함한 소수의 수출 고객을 위해 총 1,000대의 F-102가 생산됐다.


1960년대에 미 공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폭격기 호위 및 지상 공격 임무에 제한적으로 참여했다. F-102는 McDonnell F-101 Voodoo와 이후 McDonnell Douglas F-4 Phantom II로 보완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F-102에는 적외선 탐색/추적 시스템, 레이더 경고 수신기, 트랜스폰더, 보조 인공 수평계, 그리고 개량된 사격 통제 시스템이 장착됐다. 1960년대 중후반에 걸쳐 많은 미 공군 F-102가 현역 공군에서 주방위군으로 이관됐으며, 무인 항공기 QF-102 FSAT(Full Scale Aerial Target) 드론으로 개조된 기체들을 제외하고는 1976년에 완전히 퇴역했다. 요격기 역할을 이어받은 주요 후속 기종은 마하 2의 속도를 낼 수 있는 Convair F-106 Delta Dart였는데, 이는 F-102를 대대적으로 재설계한 기종이었다.

 

1956년 6월, F-102A의 실전 배치가 시작으며, 이 기종을 최초로 장비한 부대는 George 공군 기지에 처음 주둔했던 제327 전투요격비행대대였다.1958년 6월, 제327비행대대는 미 공군의 최북단 기지인 그린란드 Thule 공군 기지로 재배치되어 미국 본토에서 더 먼 거리에서 소련 항공기를 요격할 수 있게 됐다.유럽 주둔 미 공군(USAFE)과 아이슬란드 Keflavik에 주둔했던 제57 전투요격비행대대와 같은 다른 해외 부대들도 마찬가지로 F-102를 채택하여 1970년대 초까지 요격기 임무에 사용하다가 신형 전투기의 등장으로 대체됐다.전형적인 요격 대상에는 소련의 장거리 정찰 비행과 대서양 상공 폭격기 초계 비행, 그리고 쿠바를 오가는 다양한 항공기들이 포함됐다.

F-102의 공식 명칭인 "Delta Dagger"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으며, 이 항공기는 "Deuce"로 널리 알려졌다.TF-102는 나란히 앉는 쌍발 좌석 배치를 수용하기 위해 동체가 넓어졌기 때문에 "Tub"으로 불렸다.


F-102A가 운용된 수십 년 동안, 날개에 원추형 캠버를 증가시키는 여러 가지 새로운 날개 설계가 실험적으로 사용됐다. 최종적으로는 엘레본 면적을 증가시키고 이륙 속도를 줄이며 초음속 양항비(L/D ratio)를 개선하고 항공기의 비행 고도를 56,000피트(17,000m)까지 높이는 설계가 채택됐다. 날개 설계 변경으로 인해 착륙 장치 도어를 수정해야 했다.

1960년까지 방공사령부(ADC)는 F-102 델타 대거를 운용하고 있었다. 1960년대 내내 ADC 소속 TF-102와 F-102 상당수가 신규 F-102 조종사 훈련을 위해 텍사스주 Perrin 공군기지에 주둔했다. 또한 전략공군사령부(SAC)에서 B-58 Hustler 폭격기를 조종할 조종사들에게 델타익 항공기의 비행 특성에 대한 훈련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 기종은 1970년대까지 공군과 주방위군 부대에서 상당수 운용다.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된 조지 W. 부시는 1968년부터 1972년까지 텍사스 주방위군 소속으로 텍사스주 휴스턴의 Ellington 공군기지에 주둔한 제147전투요격비행단에서 F-102를 조종했다.


베트남 전쟁 참전


F-102는 베트남 전쟁에서 전투기 초계 및 폭격기 호위 임무를 수행했다. 베트남에서 총 14대가 손실됐는데, 그중 1대는 공중전에서 격추됐고, 여러 대는 지상 사격에, 나머지는 사고로 손실됐다.
F-102 부대는 1962년 지상 레이더에 포착된 레이더 접촉이 당시 심각한 위협으로 여겨졌던 북베트남 인민공군의 Il-28 "Beagle" 폭격기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동남아시아 기지에 파견되기 시작했다. F-102는 남베트남을 위협하는 이 항공기를 요격하기 위해 태국 및 인근 국가에 배치됐다.

 

이후, "Arc Light" 작전명으로 진행된 Boeing B-52 Stratofortress 공습은 작전 지역에 주둔한 F-102 전투기의 호위를 받았다. 이 임무 중 한 번은 베트남 공소속 Mig-21 전투기가 AA-2 Atoll 열추적 미사일을 사용하여 F-102 한 대를 격추했다. MiG 전투기들은 탐지되지 않고 접근했고, F-102 한 대가 공대공 미사일에 피격ehoT다. 미사일은 즉시 폭발하지 않고 기체 후미에 박혀 기체 안정성에 문제를 일으켰다. 조종사가 편대원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는 순간, 편대원은 손상된 델타 대거가 공중에서 폭발하는 것을 목격했고, 조종사는 사망했다.이는 베트남 전쟁 중 F-102의 유일한 공대공 격추였다. 다른 F-102 조종사는 이탈하는 MiG-21을 향해 AIM-4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명중시키지는 못했다.


F-102는 지상 공격 임무에 간헐적으로 사용됐지만, 그 성공률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항공기 자체나 조종사 훈련은 지상 공격 임무를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었다. 제509 전투요격비행대대(FIS)의 F-102는 1964년 8월 4일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에서 다낭 공군기지로 이동했다. 이 요격기는 동체 격납고에 24문의 2.75인치(70mm) FFAR 로켓포드를 장착하고 있었으며, 주간에는 다양한 유형의 북베트남 목표물에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야간에는 F-102의 기수 부분에 장착된 IRST(적외선 탐색 및 추적)와 함께 열추적 Falcon 미사일을 사용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되어 Ho Chi Minh Trail을 따라 야간 교란 공격을 자주 수행했다. 일부 F-102A는 기존의 AIM-4 Falcon 미사일 두 발 대신 측면 격납고에 AIM-26 Super Falcon 미사일 한 발씩을 장착할 수 있도록 개조됐다. 단좌형 F-102A외에도 TF-102A 복좌형은 두명의 조종사와 70mm 로켓을 장착하여 전방항공통제 임무에 적합했기 때문에 전방항공통제 임무에 사용됐다.1968년 모든 F-102가 미국으로 반환될 때까지 베트남에서 운용됐다.

 

1973년 Pave Deuce라는 이름의 실물 크기 공중 표적(FSAT Full Scale Aerial Target) 프로젝트에 따라 6대의 항공기가 QF-102A, 그리고 나중에는 PQM-102B(MiG-21 위협 항공기를 모방)로 개조되어 표적 드론으로 사용됐으며 결국 이 프로그램은 수백 대의 F-102를 신형 전투기용 표적 드론 및 미 육군의 Patriot 방공 미사일 시스템 시험용으로 개조했다.

F-102와 TF-102는 터키와 그리스에 수출됐다.1969년 그리스는 단좌형 F-102A 19대와 복좌형 TF-102A 5대등 24대를 도입했으며 1977년 Mirage F1CG 전투기로 교체될 때까지 잠시 그리스 공군에서 운용됐다. 

터키는 1968년부터 약 50대의 F-102A와 TF-102A를 미 공군으로부터 이관받아 F-84F Thunderstreaks을 대체했다. 터키 F-102는 1979년 중반까지 두개 비행대대에서 운용됐으며 각각 F-104G와 F-100C로 교체됐다.

터키의 F-102는 1974년 터키의 키프로스 침공 당시 전투 임무에 투입됐다. 터키의 키프로스 침공 당시 에게해 상공에서 그리스의 F-5와 터키의 F-102 간의 공중전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각자 그리스 F-5 전투기가 터키 F-102 전투기 두 대를 혹은 터키 F-102 전투기가 그리스 F-5 전투기 두 대를 격추했다고 엇갈린 주장을 했다.

그렇지만 그리스와 터키 모두 공식적으로 자국 항공기 손실을 부인했다. F-102는 결국 1979년에 양국 공군에서 퇴역했다.

미국은 1976년에 F-102를 퇴역시켰고, 마지막 QF-102A/PQM-102B 드론은 1986년에 폐기됐다. 현재, 천대가 만들어진 F-102중에서 비행 가능한 기체는 남아 있지 않지만, 많은 기체가 박물관이나 공군 및 주방위군 기지의 정문 경비용으로 영구 전시되어 있다.

 

 

핀업걸 Barbara Lang이 327 전투요격비행대를 방문, Convair F-102A Delta Dagger 전투기를 어루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