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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전투기 & 공격기

미 해병대 전자전 공격기로 맹활약했던 EA-6B Prowler

by viggen 2023. 12. 14.

미 해병대 EA-6B Prowler 전자전 공격기가 2007년 1월 4일 미 동부 해안 상공에서 미 공군 KC-135로부터 공중급유를 받으며 비행하고 있다.

개발

지대공미사일은 전쟁의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꾼 주인공 중 하나다. 이들의 등장 이전에 지상에서 기관포나 대공포로 하늘을 나는 적기를 격추하는 것이 마치 운에 맡기는 행위와 다름없었다. FCS(Fire Control System, 사격통제장치)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명중률이 향상되기는 했지만 사거리의 제한 등은 여전하다. 때문에 오늘날은 내습하는 적기를 원거리에서부터 요격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지대공미사일이 방공망의 중핵으로 활약 중이다.

지대공미사일은 제2차 대전이 종전하면서 실전 배치되지 못한 바서팔(Wasserfall)을 최초로 보지만 1960년대가 돼서야 명중률이나 신뢰성이 무기로써 사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이때부터 비행기가 자유롭게 하늘을 날기 어렵게 되었다. 이처럼 대공 전투 방법이 획기적으로 바뀌었음을 알린 무대는 베트남전쟁이었다. 미국은 자신만만하게 전쟁에 뛰어들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전까지 유유자적하게 작전을 펼치던 작전기들이 예상외로 고전을 겪었다. 북베트남이 미군기들의 예상 침투 경로에 다층적으로 구축한 방공망에 하나둘씩 낭패를 보았던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소련이 지원한 SA-2 지대공미사일이었다. 때문에 하늘에서 원활하게 작전을 펼치려면 먼저 레이더를 제압해야 했다. 문제는 레이더 사이트가 원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격파하기 위해 침투하는 자체부터 어려웠다는 점이다.

때문에 레이더를 마비시키는 임무에 특화된 작전기가 전자전기가 등장한다. 1943년 영국이 랭커스터 폭격기에 레이더 교란용 채프를 장착해서 사용한 것을 시초로 보기 때문에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되었다. 채프는 공중에 이물질을 살포해서 레이더파를 교란하는 방식이지만 이후 전자전에 특화된 전용기의 성능은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레이더의 작동을 불통이 되도록 만드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베트남전쟁 참전 초기에 미국은 당시에 보유 중이던 EB-66, EF-10B 등을 투입했지만 방공망 제압에 나설 때 여타 작전기들과 보조를 맞추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특히 항공모함을 기반으로 작전을 펼치는 해군은 EA-1에 탑재된 전자전 장비와 기체의 성능이 떨어져서 고민이 많았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이 1960년대 초, 미 해병대의 소요 제기에 따라 실험적으로 개발된 EA-6A였다.

비행 성능은 좋았으나 ECMO(Electronic Countermeasures Officers, 전자전요원)가 한 명만 탑승할 수 있어 임무를 수행하는 데 부담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27기만 제작되었다. 오늘날 미 해군의 전자전기인 EA-18G 그라울러(Growler)도 ECMO가 한 명이지만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성능이 개량된 컴퓨터와 장비들을 탑재했기에 충분히 운용이 가능하다. 반면 당시의 기술 여건 상 한 명의 ECMO가 장시간 임무를 수행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EA-6A 제작사인 그루먼(Grumann)은 탑승 인원과 장비를 추가 장착할 수 있도록 동체를 1.37m 연장한 개량형을 당국에 제안했다. 이를 미 해군이 수용하면서 1964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었고 더불어 여기에 장착할 보다 성능이 향상된 장비, 센서의 제작도 함께 병행되었다. 무장 탑재량이 크고 기체의 안정성이 좋은 A-6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에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1968년 5월 25일, 초도 비행에 성공했고 이후 진행된 각종 실험을 별다른 문제 없이 통과한 후 EA-6B 프라울러(Prowler)라는 이름으로 양산이 결정되었다. 1971년 VAQ-129(제129전자전비행대)를 시작으로 배치가 이루어졌고 동시에 베트남전쟁에 투입되었다. 이후 지속적인 개량을 거치며 미국의 주력 전자전기로 활약했고 2019년을 마지막으로 모든 임무를 후계기인 EA-18G에게 넘긴 후 퇴역했다.


특징

EA-6B의 주 임무는 앞에 언급한 것처럼 ECM(Electronic Counter Measures, 전자전)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장비가 탑재되어 있는데 핵심은 AN/ALQ-99다. 방해 전파를 쏴서 적의 레이더를 교란시키고 아군기를 적의 레이더 탐지로부터 숨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장비로, 수직 미익 상부의 페어링에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고 탈부착식 포드를 주익 및 기체 하부에 추가 부착해서 작전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 외에도 적의 통신을 교란할 수 있는 AN/ALQ-92, UHF 통신전파 방해기, 다중대역 자체 방어 장비, 전술지휘 및 통제 장비처럼 기체 구조에 가장 최적화된 기기들도 함께 장착했다. 때문에 EA-6B는 단편적인 임무만 수행하던 전작들과 달리 진정한 최초의 전자전기라고 할 수 있다. 3명의 ECMO가 탑승하는데 앞 좌석의 1명이 통신 방해 임무를, 뒷좌석의 2명이 전자 방해 임무를 전담한다.

EA-6B의 또 다른 장점은 AGM-45 Shrike, AGM-88 HARM 등으로 SEAD(Suppression of Enemy Air Defence, 적 방공망 제압)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자전이나 SEAD 등은 아군 본진이 공격을 펼치기 전에 실시하는 사전 정지 작업에 해당되는 임무다. 즉, 이들의 노고에 따라 작전의 성패가 결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EA-6B는 드러나지 않게 묵묵히 활약하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운용 역사

EA-6B는 1966년부터 1991년까지 총 170기가 생산되었고 전량 미 해군, 해병대가 사용했다. 1998년 EF-111이 퇴역한 후에는 공군도 운용하면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삼군이 함께 운용하는 기록을 남겼다. 각 군 별로 세부형이 차이가 나는 F-35나 F-4와 달리 EA-6B는 그대로 운용되었다. 1971년 배치 직후 베트남전쟁을 시작으로 미군이 참전한 수많은 전쟁, 분쟁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EA-6B의 전과는 구체적으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데, 그 이유는 전자전기 자체가 최고의 비밀 무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탑재된 각종 전자전 장비와 센서는 미국이 대외 노출을 꺼릴 만큼 중요하게 취급하는 기술의 집약체다. 당연히 대외 판매를 금하고 있는데 후속기인 EA-18G가 미국의 1급 동맹국인 호주에 판매되었지만 일부 기능이 제한된 다운그레이드형으로 추측될 정도다.

지속적으로 개량을 하며 수명을 연장하여 왔지만 노후화가 심각해지면서 2009년부터 순차적으로 EA-18G로 교체되기 시작해 2019년 3월 8일, 카타르 알 우데이드 기지에 배치된 VMAQ-2(제2해병전자전비행대) 소속 기체를 마지막으로 전량 퇴역되었다. 최초 양산 시점부터 따지면 거의 50년 가까이 일선에서 활약한 장수 기종이었다. 그만큼 일선에서 신뢰를 받았던 작전기라고 할 수 있다.(남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