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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전투기 & 공격기

독일공군 Eurofighter 특별한 도색으로 이스라엘 독립기념일 축하

by viggen 2023. 7. 30.

지난 4월 25일은 이스라엘 독립 75주년 기념일이었다.   


유대력에 따르면 이날은 이스라엘의 75번째 독립 기념일로 독일 공군이 처음으로 기념행사에 참여했다.

기념일 앞두고 4월 24일, 특별 제작된 Eurofighter Eagle Star 2.0 이 다른 유로파이터 2대 및 수송기 A330 MRTT와 함께 이스라엘에 배치됐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The state of Israel)이란 국가가 역사 속에 다시 등장했다. 성경 속의 나라가 현실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이스라엘의 독립기념일은 유대력 기준이라 매년 달라지는데, 올해는 4월 26일(25일 일몰부터 26일 일몰까지)이었다.

 

독일이 이스라엘과 협력, 동맹의 관계로 긴밀한 사이임을 분명히 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 이스라엘 독립을 기념하는 특별한 도색을 적용한 Eurofighter Eagle Star 2.0 이 을 이스라엘도 파견하여 특별 비행을 실시했다. 비행 경로는 이탈리아, 미국, 독일, 이스라엘 전투기 편대를 구성하여 크네세트 등 이스라엘 상공을 비행하는 것이었지만 이 경로는 서안지구 상공도 통과할 수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해 Eagle Star 2.0은 잠시 대형을 이탈하여 비행했다.


이스라엘의 독립기념일은 유대인에게 감격과 희망의 날이다. 국가(國歌)의 제목부터 ‘희망(하티크바)’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AD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당한 뒤 유대인들은 전 세계로 디아스포라, 즉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죽인 민족이란 이유로 유럽에서 반유대주의(Anti-Semitism)에 시달렸다. 십자군전쟁 때는 가는 곳마다 유대인을 죽였다. 14세기 흑사병이 유행했을 때 유대인들만 병에 걸리지 않자 대량 학살하기도 했다. 히틀러에게 600만명이 희생당한 홀로코스트는 그 절정이었다.

그런 유대인들이 2000년의 유랑 생활을 끝내고 ‘에레츠(땅) 이스라엘’로 돌아온 것은 기적이었다. 이스라엘 중앙통계국은 지난 4월 24일 “건국 당시 80만6000명이던 인구는 지속적인 알리야(Aliyah·유대인의 본토 귀환) 등으로 지금은 12배 늘어난 10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972만7000명이 살고 있다.

여기에 이스라엘은 2000년 이후 북쪽 도시 하이파에서 가까운 동지중해에서 타마르·레비다탄·카리시 등의 100년이상 사용할 수 있는 가스전(田)을 발견하고 생산을 시작, 자원강국이 됐다. 가스전 회사 대표는 신명기 33장에서 모세가 스불론과 아셀 지파에게 축복했다는 글에서 두 지파가 배당받은 곳이 하이파 일대이고,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그의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등의 구절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유추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스라엘 독립기념일은 팔레스타인에 끔찍한 날이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건국 다음 날인 5월 15일을 ‘알 나크바(Al Nakba)’, 즉 재앙의 날이라고 정했다. 흔히 ‘2000년 동안 그 땅에 거주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유대인들이 무력으로 쫓아내고 나라를 세웠다’고 좌파 인사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1세기 로마의 유대 나라 진멸 이후 팔레스타인 땅에는 숱한 민족이 거쳐 갔다. 비잔틴 계열 유럽인을 시작으로, 이슬람과 함께 들어온 우마이야 왕조, 유럽 십자군, 슐레이만 대제 일행, 이집트 맘루크 왕조, 오스만튀르크 등 제 각각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짧게 살았다. 유목민이 많고 개종(改宗)과 인두세(人頭稅) 문제가 겹쳐 이동도 잦았다. 인구 밀도도 낮았다. ‘2000년 동안 그 땅에 거주하던’ 민족은 없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가 존재했던 적도 없다.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조상은 오스만튀르크의 주민이거나 요르단·시리아·이집트 계통의 아랍인이다. 19세기 말부터 유럽 유대인들이 시온주의에 따라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오면서 아랍인들과 만났다. 유대인들은 아랍인들에게 땅을 매입했고, 시가의 5배를 지불하기도 했다. 1917년 영국 외무장관이  유대국가의 설립을 약속하고 유대인의 알리야는 급증했다. 아랍인 인구도 늘어났고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유엔은 1947년 11월 유대국가와 아랍국가를 동시에 세우자는 제안을 했으나, 유대인은 받아들이고 아랍인은 거부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건국 선언을 한 다음 날, 아랍 5개국은 이스라엘을 침공했다. 제1차 중동전쟁이다. 신생아 1명을 놓고 30대 장정 5명이 때려 죽이겠다고 덤빈 꼴이다. 하지만 신생아가 장정들을 이기는 일이 벌어졌고, 패배의 대가로 엉뚱하게 70만명의 아랍인들만 난민 신세가 되어 오늘날 팔레스타인 문제로 불거진 것이다. 팔레스타인이란 국가를 세워 본 적도, 경영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1947년 유엔 중재안을 받아들였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지금까지 4차례 중동전쟁이 벌어졌다. 언제 5차가 벌어질지 모르는데, 그건 아마 제3차 세계대전이 되리라는 사람이 많다. (글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  이스라엘 건국 75주년 복잡한 과거와 더 복잡한 미래 2023.05.01)

 

이스라엘로 향하는 독일공군 축하사절단 Eurofighter Eagle Star 2.0와 다른 유로파이터 2대 및 수송기 A330 MRTT